KT는 2019년 FIFA U-20 월드컵에서 ‘골든볼을 수상한 이강인과 첫 후원 계약을 맺은 뒤 현재까지 6년째 광고모델로 기용하고있다.
[중앙포토] 이 시기를 바라보면서 제기되는 가장 중요한 논쟁점은 동아시아 국가 중 일본만이 근대화에 성공한 원인과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책임 소재 문제였다.근대화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세력과 식민지화를 주도한 세력이 다르기 때문에 두 논쟁은 다른 듯하지만.
조선의 식민지화 책임 문제는 크게 일본의 책임론과 조선 정부의 무능론으로 나뉘었다.아울러 1894년 동학농민 전쟁 때 일본의 대규모 파병과 함께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은 조선의 부국강병을 위해 개입했다는 일본의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해준다.일본을 모델로 삼은 개화파 지식인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과 베트남의 청년들에게도 당시 일본은 이상적인 국가였다.
이는 강대국의 옆에 있는 약소국들이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맺어야 하는 관계였다.한국 역사학계에서 사회적 관심을 끄는 논쟁이 활발하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권에서 논쟁이 시작되었으니 감사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주로 국내 학자들은 일본의 책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러시아와의 외교를 통해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했다.강화도 조약과 시모노세키 조약 물론 이러한 주장은 19세기 말 일련의 과정을 보면 실효성이 없다.
기본 예의조차 갖추지 않은 악질적인 식민지화 과정이었다.이러한 이슈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학계의 논쟁이 살아나야 한다.
장정의 내용에는 조선을 ‘속국으로 규정하였고.즉 북양대신 수준으로 깎아내렸다.